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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과검정

유상철, 그는 누구인가

by 엘로이ELOY 2019.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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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인천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부임해서 인천을 1부리그에 잔류시켜놓은 유상철 감독님(이하 유상철),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선수들과 스텝들을 챙기며 그라운드에서 약속을 지켰다.

 

  내가 유상철을 처음 봤을 때가 아마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 생방인지 뉴스인지 대한민국이 골을 넣었다길래 TV로 봤던 기억이있다. 그때는 어려서 골을 넣은 선수가 누구인지 인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을때...

 

  20년이 지난 지금 그 선수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클럽팀인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유상철 그는 과연 누구일까? 인터넷 상의 정보와 영상을 많이 참고해서 글을 써 보겠다

 

출처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728342

유상철은 1971년 10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신중, 경신고, 건국대를 졸업했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하는데 그라운드 위에서 만큼은 그런 것 같지 않다. 1994년부터 국가대표와 클럽팀에서 활약을 했다. 내가 유상철 감독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모습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 경기때이다. 2002년 부터 매스컴으로 축구를 접하고, 챙겨 보기 시작했을 때이다.

 

 

 

 

 

출처 : https://www.mbcsportsplus.com/news/?mode=view&cate=&b_idx=99850140.000#07D0
출처 : http://gonggam.korea.kr/newsView.do?newsId=01JKtE67IDGJM000 유상철을 응원하는 울산팬

클럽팀의 이력을 먼저 살펴보면 1994년 울산현대에서 데뷔하였고, 당시에는 주로 미드필더로 활약했다고 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나고 공격수로 기용돼 K리그 득점왕을 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1994년 K리그 베스트 11, 1998년 K리그 득점왕 및 베스트 11, 2002년 K리그 베스트 11 을 하며, 울산현대에서 뛰며 리그 우승 2회, 준우승 2회, FA컵 1회 우승을 외 6번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유상철이 대단한 점은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에 기용될 수 있는 최고의 멀티플레이 자원이었다는 것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출처 : https://www.mbcsportsplus.com/news/?mode=view&cate=&b_idx=99850140.000#07D0
출처 : https://sports.v.daum.net/v/20191215063203505?f=m 유상철을 응원하는 요코하마 팬
출처 : https://www.ytn.co.kr/_ln/0107_201505261910591358 가시와 레이솔의 코리안 삼총사

1999년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하여 팀을 2000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고 2001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하여 황선홍, 홍명보와 함께 코리안 삼총사로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2003년 다시 요코하마로 이적해 2003,2004 팀의 리그 2연패에 일조하기도 했다.

 

 

 

 

https://youtu.be/JmolbigXHPo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

https://youtu.be/cM9jdhUX-qw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국가대표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1994년 3월 미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국가대표에 데뷔했다. 그후 94년 아시안게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에 뛰며 2005년 3월 30일 우즈베키스탄과 A매치 122번째 경기를 뛰고 국가대표팀을 은퇴했다. 대한민국 축구 선수 중 4번째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이다.

2002년 당시 세계축구와 싸우려면 기술력을 길러야 한다는 언론의 의견과 상반되게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기술은 뛰어나지만, 체력과 정신력이 없다는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 당시 히딩크 감독의 축구에 가장 최적화된 선수중 한명이 유상철이었다. 탁월한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위치선정으로 중원을 장악하여 2002년 대한민국의 4위에 일조하며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유럽축구연맹 홈페이지에서 유상철의 2002년 월드컵 활약을 평가하길 "세계 축구팬들은 그의 등 번호 (6)을 영원히 기억할 것" 이라는 최고의 평가를 했었다.

 

 

 

 

 

출처 : http://www.incheo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6962

 

감독 커리어를 살펴보면 2009년 춘천기계공고의 초대감독을 시작으로 대전시티즌(2011~2012), 울산대학교(2014~2017), 전남드래곤즈(2018), 인천유나이티드(2019~)를 맡고있다. 개인적으로 유상철의 프로축구단 감독커리어는 밝은면 보다는 어둡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대전에서는 거의 쫒겨나듯 감독을 그만두었고, 전남에서는 초반 반짝 승점을 쌓고는 그해 여름 경질되었다. 올해 인천유나이티드를 부임하기가끼 솔직히 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 인천유나이티드 감독자리가 성적에따라 굉장히 유동적이고 마음고생이 심한 자리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출처 :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1504

역시나 유상철 감독이 부임하고 인천유나이티드는 시즌내내 강등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마지막 홈경기 전까지 홈에서 승리가 없었다. 이대로 강등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이 이번 시즌 내내 팬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유상철 감독은 뚝심있게 본인의 자리와 역할을 지켜내며 선수들과 코칭스텝들을 아우르는 원팀을 만들어 냈다.

 

 

 

 

 

출처 : http://m.g-enews.com/view.php?ud=201911241537439782e250e8e188_1&ssk=2017011302534409407_1

가을유나이티드... 인천의 축구는 지금부터!... 10월 중순 성남과의 원정경기에서 값진 승점 3점을 땄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단은 눈물을 터뜨렸다. 팬들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하면서 위로를 건냈지만, 사실 유상철 감독의 건강이상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유상철 감독은 시즌 중 췌장암 4기 투병을 인천유나이티드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밝히며 치료와 감독직을 병행하여 꼭 팀을 잔류시켜 놓겠다고 팬들과 약속을 한다. 리그 마지막 경기 경남과의 승강 플옵 결정전에서 유상철 감독은 약속을 지켜냈다.

 

이제 하나의 약속만 남았다. '유상철 감독의 쾌유' 이 약속을 꼭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할 수 있어! 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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